32. 작가의 고향. Mark Twain

3.17.2011.

이곳 북가주(Northern California)에 유명한 작가들의 연고지가 있다는 것은 이곳에 살며
덤으로 얻는 행복이다.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이곳 북가주와 깊은 인연이 있다.

마크 트웨인은 1835년 11월 미주리주 플로리다에서 태어났다. 4살 때 가족이 미시시피 강 변의 소도시 한니발(Hannibal)로 이주하였으며 이곳의 자연과 환경들이 유년기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끼쳐 그의 황금 같은 문학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11세에 아버지를 잃어 가세가 기울자 인쇄소의 수습공과 미시시피 강을 오가는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으로 일을 했다. 당시 수로 안내인은 수입이 상당히 높아 월 $250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의 배에는 어떠한 장비도 없어 수로안내인이 긴 장대로 물의 깊이를 찍어보고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깊이가 ‘두 길’(한 길은 6ft, 1.8m)이 되면 “Twain!”(고어체)이라고 선장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그의 필명이 Mark(표시) Twain(두 길, 12ft)이 된 것이고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이다.

1861년 남북전쟁이 터지자 미시시피 강을 운항하던 1200여 척의 배들이 발이 묶이게 됨에 따라 형과 함께 네바다주로 이주하였고, 그곳 신문사에 취직하여 기사를 작성하였는데 거친 풍토와 환경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기사를 정확히 써도 독자들이 잘 읽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남부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과장된 기법(Tall Tale. 한국의 옛 선데이 서울 같지 않았을까?)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등 노력하였으나, 결국 마케냐의 황금을 찾아 서부 역마차를 타게 되고 정착한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역사가 시작된 Route 49 (49번 길, 49ers high way)에 있는 Calaveras County의 Angels Camp(시의 이름)이다. 이곳 금광에서 일하면서 허풍과 만담 꾼 아테머스 워드와 작가인 하트와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엔젤스 캠프에 있는 엔젤스 호텔의 바텐더로부터 도박꾼 Jim Smiley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 도박꾼은 모든 것에 돈을 걸어 내기를 즐긴다. 그가 개구리를 잡아다 3개월 동안 점프 연습을 시킨 후 누군가와 내기를 하는데 결국은 어리석게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엔젤스 캠프 호텔.  이곳 바텐더로부터 Jumping Frog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이야기를 쓴 것이 바로 그의 최초의 단편소설 “Jumping Frog of Calaveras County”(캘러버라스 카운티의 뜀뛰는 개구리)이다. (1865년) 이 단편으로 유머 작가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계속해서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링컨이 미국정치에 인권의 씨앗을 뿌렸다면 마크 트웨인은 이곳 북가주에서 미국 문학의 쟁기질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이곳 엔젤스 캠프에서는 1930년대 공황시기를 빼고는 매년 개구리 점프 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이제는 국제적으로 알려져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55Cm 정도라고 하며 상금은 트로피와 함께 $750이라고 한다. 한국의 개구리를 가져와 훈련시키면 1m는 족히 뛸 것 같은데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도전해 보시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10여 년 전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마크 트웨인의 통나무집을 보고, 그가 지나간 길을 더듬어 본다는 것은 마치 고고학자들이 역사의 파편을 찾아 한 조각씩 맞추어보는 희열을 느낄 수가 있다.

Mark Twain Cabin

마크 트웨인 Cabin. 이곳에서 그의 첫 작품 ‘뜀뛰는 개구리’를 썼다. 미국 현대 문학의 출발지

그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샌 프란시스코의 신문사와 캘리포니아주의 수도인 새크라멘토의 신문사 새크라멘토 유니언사에서 일했다. 이 신문사에서 샌드위치 군도(지금 하와이의 옛 이름)에 관한 취재를 부탁받고 떠난다. 샌드위치 군도란 이름은 제임스 쿡 선장이 북서항로를 항해하던 중 발견한 섬으로서 아시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하와이 원주민들이 “판대기 위에서 파도를 탄다.” 이렇게 기록했다. (“riding the ocean’s waves on wooden boards”) 이 기록이 서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한다. 마크 트웨인은 당시 샌드위치 군도가 미국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열강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신문사에 알린다. 미국이 하와이를 차지하게 되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그 후 그는 5개월에 걸친 세계여행을 떠난다. 지금도 어려운 세계여행을 당시에 증기선을 타고 떠났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는지 알 수가 있다. 이 여행의 기록을 샌 프란시스코 일간지 ‘알타 캘리포니아’에 “지중해 유람기”라는 제목으로 기고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다. 1869년.

1870년 뉴욕출신 올리비아와 결혼하게 되는데, 5개월 동안 편지마다 번호를 붙여 184통의 편지를 보낸 후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지중해 유람기”로 귀족들로부터 멸시를 받자 “서부 유랑기”(1872년)를 출간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서민의 작가라고 했다. ‘천재들의 책은 포도주와 같다. 나의 책은 물과 같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1873년 “도금의 시대”(The Gilded Age)에서는 부유층의 탐욕스러움을 꼬집는다. ‘어떤 사람은 계급을 숭배하고,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숭배하고,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숭배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돈을 숭배한다.’

1876년 그 유명한 “톰 소여의 모험”(Adventures of Tom Sawyer)이 출간된다. 그리고 1885년 “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시조로 자리매김 한다. 이 책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 헤친 책으로서 가장 핵심적 문장은 이 부분이다. ‘내 생각엔 검둥이도 우리 백인들처럼 제 가족을 그리워 하는 것 같아, 그런데 왜 백인들은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 (원본에 실지로 “nigger”라고 표현했고 이로 인해 당시에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감히 그였기에 가능 했고, 그는 진정으로 African American의 아픔을 이해했다)

마크 트웨인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실화’가 있었다. 어느 여름 뉴욕주 엘마이라에있는 처형의 농장에서 흑인 여성 매리 앤 이라는 노예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항상 웃으며 일을 잘했고 명랑했다. 어느 날 마크 트웨인은 그녀에게 물었다. “매리는 걱정도 없나 봐, 무엇이 즐거워 항상 웃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대답했다.

“주인님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애들 아버지와 아이들 7명이 오손도손 코네티컷에서 살았답니다. 그런데 주인이 애 아빠를 남부에 팔아버리고 아이들도 모두 팔아버려 뿔뿔이 흩어지고 저도 지금 여기 혼자 와 있답니다. 그러다 남북전쟁이 터져 흑인부대가 제가 사는 농장에 진주를 하여 수프도 끓여주고, 빵도 구워주었는데 어느 날 꾀죄죄한 군인 하나가 제 옆에 앉는데 자세히 보니 제 아들 헨리였습니다. 너무 반갑고 놀라 울고 있는데 아들이 가만히 이렇게 말합디다. ‘엄마, 내가 돈 벌어서 엄마사고, 아빠사고, 그리고 동생들 모두 다 사서 함께 행복하게 지내요.’ 이럽디다. 주인님, 제가 걱정이 없어서 웃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마크 트웨인은 이 이야기를 소설로써 제목을 “실화”(True Story)라고 붙여 출간한다. 지금까지도 이 소설은 남부 특유의 사투리와 노예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허클베리 핀으로 그 이전까지 미국 문학이 유럽 문학의 아류라는 혹평을 면하게 되었고, 헤밍웨이도 미국문학은 “허클베리 핀” 한 권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지구로부터의 편지”에서는 재물만 챙기고 식민지를 통하여 선교하는 기독교인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메가 처치(Mega Church. 대형 교회)는 부패와 타락의 복판에 서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가장 큰 남가주의 수정교회가 파산했다. 마크 트웨인, 그가 100년 후 지금을 예상이라도 했을까? “예수께서 지금 여기 계신다면, 그분께서는 기독교인이 되려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여성의 권리 신장에도 앞장섰으며, 특히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링컨의 노예 해방선언은 흑인들뿐만이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흑인들이 예일대 법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했고, 흑인 학생이 성직자가 될수있도록 지원하였다. 말년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What is Man?·1906)로 인간의 본질과 정신세게를 알고 싶어했다. 미국의 세익스피어, 문학계의 링컨, 마크 트웨인, 그는 1910년 4월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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