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미래의 전쟁은 식량 전쟁

12.13.2011.

이 글은 제가 약 30년 전에 미래의 직업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건에 관한 글입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선물투자(Futures Investment)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당시에 그 사건을 보면서 막연하게 나도 한번 꼭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나이가 50대 이상인 분들은 ‘박동선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추한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지난 사건을 되돌아보고 식량이 앞으로 우리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코리아 게이트’ 박동선 사건의 실체

박동선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박동선은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아버지가 이사인 배재 중학에 다니다 17세인 1952년 미국으로 유학 가 시애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학을 다니다가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으로 들어갑니다. 공부는 별로였지만 사교성이 많았나 봅니다. 박정희 시대 때 김대중 납치사건을 폭로한 대가로 이후락에게 호되게 당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유명한 재미 언론인 문명자 씨의 얘기로 대신합니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던 그가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한 것을 보면 천부적인 사교성인 듯하다. 박동선은 시험 때만 되면 교수들을 찾아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라는 식으로 사정해 시험을 보지 않고 학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속은 교수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연히 교수들끼리 얘기하다 ‘동선 팍’의 얘기가 나왔는데 너도나도 속았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 교수들이 퇴학시키려 하였는데 역시 그의 천부적인 사교술로 무마하여 졸업은 하였다 한다.”

1962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로비스트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당시 로비스트로 유명한 안나 세놀트라는 중국인 1세인 여성을 만나게 되어 상 하 의원을 소개받게 됩니다. 그러다 당시에 수입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쌀의 중계권을 따면 수입이 많다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중계권을 따게 되면 미국 회사로부터 엄청난 커미션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중계권을 독점하기 위해 하원의원인 리처드 해너를 찾아가 67년 크리스마스 때 한국을 가게 되면 압력을 넣어 독점권을 따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해너 의원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김형욱을 만납니다. 박동선을 김형욱에게 소개한 사람은 당시 주미대사인 정일권이었습니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김형욱이 못 할 일이 없었습니다. 김형욱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은 박동선은 1970년까지 막대한 쌀 중계수수료를 챙겼고 당연히 그 돈의 일부는 김형욱과 리차드 해너에게도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는 법, 김형욱이 1971년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자 박동선 역시 중계권을 빼앗깁니다. 여기에는 김형욱과 앙숙인 박종규 경호실장의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박종규는 박동선의 청와대 출입을 금지하고 중계권을 박탈시켜버렸습니다. 여기서 교훈 한가지, 거간꾼들은 너무 욕심내지 말고 여러 사람에게 두루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박동선이 아닙니다. 리처드 해너 의원을 동원하여 미 의원들이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도록 합니다. 그들이 타깃으로 삼은 것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습니다. 미국의 쌀 생산지 출신 상하의원들이 쓴 편지를 들고 이후락을 만납니다. 해너는 박동선이 미국 의회 의원을 알고 있으니 대미 로비스트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후락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커미션 일부를 박정희가 만든 한국 공화당의 정치 자금으로 활용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박동선은 이후락의 입김으로 1972년 3월 쌀 중계권을 다시 획득합니다.

이후락이 박동선에게 쌀 중계권을 다시 준 것은 당시의 한국 사정이 매우 급했기에 대미 로비스트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에 깊게 빠져들어 닉슨 행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전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1969년 7월 25일 ‘닉슨 독트린’을 선언합니다. “아시아 국가는 더는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안보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닉슨은 의회의 압력으로 주한 미군을 1971년 3월부터 철수시키기 시작합니다. 한국 정부는 위기의식을 느꼈고 미 행정부와 의회에 로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바로 박동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박동선은 한국 정부의 로비스트가 되어 제일 먼저 한 일이 군사 및 경제외교위원회 소위원장인 오토 패스만 의원을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토 의원은 박동선을 싫어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사교술로 박동선은 자신의 이익과 박정희 정권을 위해 로비를 합니다. 그러나 박동선은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미국식이 아닌 한국식의 로비를 해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 맙니다. 미 상원 의원은 연간 $100 이내서만 선물을 받을 수 있고 하원은 아예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박동선은 72년부터 75년까지 수많은 의원에게 금품과 선물을 제공했습니다. 대상 의원 대부분이 쌀 생산지 출신 의원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미 정부와 언론의 추적을 받게 됩니다.

하원의원인 도널드 프레이저 의원이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하고 언론의 취재로 한국의 또 다른 로비스트가 나타납니다. 바로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진 김한조라는 사람입니다.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박동선 한 사람에게만 로비를 맡긴 게 아니었습니다. 박정희가 미국 정가에 로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권 유린과 독재 정치로 미국에 반한 감정이 팽배하여 그 결과 주한 미군 철수라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무리한 로비가 될 수밖에 없었고 비밀은 언젠가 고개를 들고나온다는 진리 때문에 ‘코리아 게이트’가 터지고 만 것입니다.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 포스트가 무려 10면에 걸쳐 폭로함으로써 박동선 사건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박정희 정권은 돈으로 의원들을 매수했다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고 아마추어적인 한국식 로비가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려짐으로써 국가 이미지는 추락하고 맙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었으면 덜 창피했을 것인데 한국 정부는 즉각 박동선은 한국 정부와 무관하다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랬더니 워싱턴 포스트가 이 사건을 감지한 것은 미 중앙정보국이 전자 장비로 청와대를 도청하여 얻은 정보라고 폭로합니다.

한국 정부는 너무 놀라 미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침묵으로 넘어갔습니다. 마치 저의 지난 글 “미국과 독일 무엇이 다른가?”에서 미국이 자신들이 한국에 판 F-15K의 타이거 아이를 한국 공군이 해체하였다고 주장하다가 한국 측에서 역추적하여 미국이 한국 공군에 스파이를 심어둔 것을 알아낼까 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과 같습니다.

청와대까지 도청하는 미국, 무섭습니다. 밤에 주무실 때 아무 말 하시지 말고 주무십시오. 잠꼬대도 영어로 하시지 말고 한국어로 하십시오. 안방까지 도청할지 누가 압니까?

코리아 게이트는 1977년 인권 대통령이라는 지미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됩니다. 77년 6월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의 미 의회 청문회 증언으로 청와대 도청이 사실로 드러납니다. 국무부, FBI, CIA, 법무부, 국방부 등 미국의 5개 기관이 총동원되어 조사를 벌입니다. 한.미 관계는 얼어붙었고 미국 정부는 한국으로 도피한 박동선을 송환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미국은 한국에 대한 식량 차관을 중단하겠다고 압력을 가하자 한국은 박동선에게 면책 특권을 부여하여 미국으로 넘깁니다.

프레이저 위원회는 36개의 항목으로 박동선을 기소하였지만, 나중에 취하해 법적 처벌은 면합니다. 그러나 쌀 중계권으로 취득한 대가에 대한 세금으로 $1,500만 달러를 부과받았습니다. 당시 돈으로 단지 세금으로만 $1,500만 달러라면 커미션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의 액수만큼 한국 국민은 쌀을 비싸게 사 먹었다는 결론입니다. 1978년 10월 리처드 해너 의원이 실형을 선고받고 7명이 징계를 받는 선에서 코리아 게이트는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미 의회 프레이저 위원회에서 조사해 보니 박동선이 곡물회사로부터 받은 커미션의 8%만이 미국 의원들에게 뿌려졌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누가 챙겼을까요? 위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 이후락이 공화당의 정치자금으로 쓰기 위해 박동선에게 중계권 독점을 주었습니다. 결국, 박정희의 유신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운 돈이 쓰이게 되었고 그나마 또 다른 한국의 로비스트 김한조는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돈을 한 푼도 미 의원들 로비에 쓰지 않고 혼자 꿀꺽했습니다. 이것은 프레이저 위원회에서 조사한 사항으로 단 한 명도 김한조로부터 돈 받은 의원이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기꾼, 대단한 프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합니다. 저의 지난 글들을 보시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국, 당하는 것은 불쌍한 국민이라는 사실입니다. 2008년에 시작된 월 스트리트 금융위기로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은행과 기업들로 투입되었습니다. 공적자금을 받은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 등 임원들은 이미 그 이전에 천문학적인 급여와 보너스를 챙겨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챙겨가서 망하게 된 회사를 결국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내서 물어준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한국의 유료 도로는 수익자 부담이라는 거짓말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내가 그곳을 지나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으니 세금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유료 도로를 건설한 회사가 일정 수준의 통행량이 되지 않아 손해가 나면 정부에서 그 손해액만큼 변상해 줍니다.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내주는 겁니다. 바로 이런 것과 똑같이 박동선과 독재자의 권력유지를 위해 불쌍한 한국 국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곡물회사는 커미션을 준 만큼 쌀을 비싸게 한국에 팔았을 것이고 한국 국민은 비싼 쌀을 사 먹음으로써 독재자의 주머니를 채워준 것입니다. 실제로 나이 드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옛날 정부미라는 쌀은 벌레는 말할 것도 없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형편없는 3등급 쌀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알칸소, 캘리포니아 등 쌀을 팔아야 정치 생명이 유지되는 주의 출신 의원들은 쌀 뿐만이 아니라 콩, 옥수수 등 다른 곡물들도 한국에 수출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한국 농민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농촌 분들은 막걸리 한잔에 담배 연기 깊이 빨며 박정희 향수에 젖어 있습니다.

제가 글 서두에 언급한 선물투자(Futures Investment)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동기가 코리아 게이트라고 했습니다. 로비스트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이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선물시장에서 곡물 메이저들과 경쟁하여 직접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다면 미국의 거대한 곡물 메이저에게 비싸게 살 필요도 없고 커미션을 줄 이유도 없습니다. 한국이 직접 선물 시장에서 핸들을 못하기에 곡물 메이저에게 지금도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의 글 2번 ‘선물(Futures)이란 무엇인가?’ 글 4번 ‘선물(Futures)거래의 역사’를 참고하십시오. 여기서는 곡물 메이저들의 횡포를 고발합니다.

곡물 메이저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2가지가 있습니다. 에너지와 식량입니다. 에너지의 기본인 석유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고 있는 회사(쉘, 쉐브론, BP, 스탠다드 오일 등)를 석유 메이저라고 하고 전 세계의 곡물을 독점으로 유통 공급하는 회사를 곡물 메이저라고 합니다. 카길(Cargill.미국), 콘티넨탈(Continental.미국),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프랑스), 벙기(Bunge.브라질), 가낙(Garnac.스위스)를 5대 곡물 메이저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1999년 카길이 콘티넨탈의 곡물사업을 인수 합병하면서 미국의 아처 대니얼 미들랜드(ADM.Archer Daniel Midland)가 5대 메이저로 들어갑니다.

카길은 영국의 스코틀랜드 출신들이 1865년 미국에서 소금 장사로 시작한 회사로 150년 동안 혼인을 통해 카길과 맥 밀런 가문에 의해 지금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들 회사의 특징은 철저히 비공개 회사로 정확한 재무자료를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주식 공개를 하지 않았으니 공개 의무가 없습니다. 자금 관리도 스위스 은행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국가를 상대로 장사하니 커미션이 얼마나 오가는지 박동선 사건에서 어렴풋이 짐작하실 것입니다.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이 바로 카길사였습니다.

미네소타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카길사 하나만 분석해 보면 곡물 메이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10만 명의 종업원에 61개국에 걸쳐 800개가 넘는 공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곡물 시장의 5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곡물뿐만이 아니라 철강과 카지노, 옥수수와 밀 가공, 설탕, 면화, 석유 무역과 운송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손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인공위성으로 세계의 곡물 경작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날씨 등으로 흉작이 예상되면 매점 매석을 통하여 곡물 가격을 폭등시킵니다.

또한, 시카고 곡물 선물시장(CBOT)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합니다. CIA도 카길로부터 정보를 받아볼 정도라면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한국이 시카고 곡물 선물시장에 투자할 전문 인력이 없어서 한국 곡물의 80% 이상을 이러한 곡물 메이저들로부터 비싸게 사오는 것입니다. 한 미간 FTA가 발효되면 한국 농민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미 카길은 충남 홍성에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논 20만 평에 첨단공장을 세워 수출하면 우리 국민에게 필요로 하는 쌀을 충분히 사다 먹을 수 있을 텐데 왜 이토록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대한민국의 어느 재벌 총수가 한 말입니다. 한심한 인간입니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대부분 곡물 자급자족률이 5%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해 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식량은 재벌 총수의 말처럼 첨단 공장에서 생산할 수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야 생산이 가능합니다. 자연 속에서 태어난 인간 역시 첨단 공장에서 가공되지 않은 곡식을 먹고 살도록 신체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공장에서 생산하여 쓸 수 있지만, 식량만큼은 자연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식량 주권을 빼앗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급격한 기후 변화로 곡물 생산량은 급감할 것이고 그에 따라 곡물 메이저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곡물 수입 의존도는 80%에 달합니다. 막연히 생각하면 한국이 친미 국가이니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온 제국의 행태를 분석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전쟁과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는 식량난이 반드시 있습니다. 제국은 자국의 식량을 원조하고, 받는 나라는 그 식량의 농사를 자동으로 포기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밀가루 포대에 한국과 미국 국기가 악수하고 있는 사진을 자주 보셨을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밀가루를 지원받는 대신에 밀 농사를 포기하게 됩니다. 무상으로 밀가루가 들어오는데 누가 밀 농사를 짓겠습니까?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쿠바의 사탕수수, 인도네시아의 고무, 싱가포르의 홍차, 필리핀의 마닐라 삼, 아프리카의 광산 등이 제국의 깃발 아래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하는 이라크를 보십시오. 카길 출신의 농무부 수석자문관이 이라크 농업 재건 담당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안 봐도 훤 합니다. 이라크 유전을 폭격해 놓고 불 끄는 작업을 수천억 달러에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가 회장인 핼리 버튼이라는 회사에 일감을 준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병 주고 약 주고 가 아니라 병 주고 목 쥐어 숨을 멎게 합니다.

한국인들은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인지 망각을 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97년 IMF 외환위기 때 밀가루 가격이 70% 이상 폭등하자 빵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수입에 의존하는 사료값이 오르자 축산 농민들은 기르던 가축들을 ‘정리해고’했습니다. 곡물은 생산이 1%만 줄어도 시카고 선물시장에서는 50%가 폭등합니다.

미국이 곡물 수출을 20년 동안 중단한다면 전 세계의 국민은 멸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중국 때문에도 곡물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땅은 넓어도 기후와 후진적 농업 방식으로 생산량이 따르지 못해 매년 엄청난 양의 곡물을 수입합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그 해에 수입할 곡물의 양을 발표했으나 시카고 선물시장에서 곡물 가격 폭등으로 지금은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곡물은 공기와 같습니다.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지만 없어지면 사람도 함께 사라집니다. 개방도 좋지만, 국민의 생사가 걸려 있는 식량 문제는 위정자들이 먼 안목으로 깊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한국의 철도청이나 한국 전력은 매년 적자가 많이 납니다. 그래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이유는 공공재의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적자 난다고 민간에게 개방한다면 피해는 국민이 보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이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도 놀리지 않고 옥수수를 심고 감자를 심을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해야 합니다. 나의 생명을 남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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