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휴대할 수 있는 권력, 그리고 유대인 (2)

7.22.2011.

세계 금융사에서 유대인을 빼고는 논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금융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금융 역사는 크게 두 가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메디치 가문과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메디치 가문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벌고 르네상스 시대 문학과 예술인들을 지원하여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과 계략으로 돈을 벌고 지금까지 미국은 물론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지오반니 메디치가 베네치아(베니스)에 최초로 은행을 설립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베네치아를 지금까지 여러분은 미래의 어느 날 산타루치아를 부르며 그대와 함께 곤돌라를 타고 여행해 보고 싶은 곳으로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메디치 가문을 알아보기에 앞서 우리의 혈족과 관련된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베네치아’라는 4글자 속에 우리 한민족의 역사와 로마의 멸망이 들어 있습니다. 베네치아라는 말뜻은 원래 도망온 로마인들이 ‘베이네티암(Veni etiam, 나도 여기에 왔다)’이라고 외쳤는데, 베네치아란 지명이 바로 이 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의 역사 이야기는 독일 ZDF TV의 다큐멘터리 내용과 많은 진보적 서양학자와 한국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객관성을 위하여 서양학자들의 견해를 많이 참고 했습니다.

여러분, 흉노(匈奴)족과 훈족에 대하여 들어 보셨나요? 들어 보셨다면 북방의 오랑캐 야만 유목민이었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중국이 이들에게 하도 많이 당해 이렇게 이름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몽골도 몽고라고 비하해 불렀습니다. 우리 세대는(50대 이상)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연구한 업적과 그것을 이어온 친일 한국학자들이 쓴 역사만 공부해 왔습니다. 편향된 역사관을 심어 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삼국 통일도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나쁜 선례를 남긴 점과 그 결과로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당나라에 빼앗기고 사실은 실속이 없었다는 내용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광개토대왕

한국인들은 멸망한 대국 고구려에 대한 강한 매력을 느낍니다. 고구려는 한민족 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광개토대왕(375∼413) 재위 당시 고구려 영토는 서쪽으로는 요하, 북쪽으로는 개원, 동쪽으로는 옥저와 예, 그리고 남쪽으로는 한강 유역에 이르렀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413∼491) 시대에 고구려가 고조선이 차지했던 영토를 거의 모두 되찾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금에 와서 삼국이 아닌 4국 시대 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가야국을 신라 일부로 보아 왔던 것을 전혀 다른 국가로 본 것입니다. 친일 학자들 밑에서 배운 소장 학자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훈족의 역사

우리는 흔히 몽골족이 유럽을 정복한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몽골의 선조인 훈족이 유럽을 점령한 역사가 있습니다. 역시 같은 몽골족입니다. 몽골족이 대단한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훈족은 300년대에 유럽을 정복했고 몽골의 징기스칸은 그보다 훨씬 늦은 1200년에 유럽을 정복했습니다. 훈족(Huns)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 약 700년간 중원 지역을 놓고 중국과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훈족은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합니다. 이때 흉노에 속해 있던 한민족 원류 중 일부가 서쪽(유럽)으로 진출하면서 훈족으로 성장했고, 또 한 부류는 한반도 남부지역까지 진출해 현재의 한민족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증거로는 프랑스 등 서유럽에 사는 훈족의 후예들에게서 몽고반점이 발견되고, 훈족의 골상이 편두(扁頭, 납작 머리)라는 사실입니다. 학자들은 몽골 지역부터 독일 튀링겐과 오덴발트, 프랑스 칼바도스 지방에 이르는 훈족의 이동 경로에서 발견된 분묘에서 나온 훈족의 인골을 분석한 결과, 훈족은 관자놀이와 이마가 특이하게 눌려 있었고 머리 둘레에 고랑 같은 주름이 팼으며, 머리통이 길게 늘어나 있는 편두라고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가야국이 탄생했던 경남 김해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발견됐습니다. 또 법흥왕 등 신라의 왕들도 편두였다고 합니다. 최치원은 신라의 국사 지증대사의 공덕비에 법흥왕이 편두라고 기록했답니다. 이 밖에도 ‘동복'(고기를 제물로 바칠 때 쓰는 동제 용기로 대형 화분처럼 생김)의 발견과 동복에 새겨진 신라 금관의 출(出)자형 장식과 녹각형상(사슴뿔 장식)이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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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

서양에서 로마를 호령한 훈족은 한민족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국을 건설한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징기스 칸과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아틸라(Attila, 395∼453)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틸라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훈제국의 왕입니다. 세계 3대 제국을 건설한 아틸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보다 20년 늦은, 훈족이 서유럽을 침공한 지 20년이 지난 395년에 문주크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틸라가 지배한 훈제국의 통치권은 남으로는 발칸반도, 북으로는 발트해안, 동으로는 우랄산맥, 그리고 서로는 현재의 프랑스 땅에 이르는 실로 광활한 영토에 미쳤습니다. 통치하는 종족만 해도 45개 종족에 달했답니다.

지금까지 훈족과 한민족을 연계시키지 못한 것은 서유럽을 공격한 훈족의 원류를 서양 학자들이 투르크 민족이라고 추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동로마(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키 이스탄블) 황제들이 훈족 지도자들을 알타이어로 ‘강한 사람’을 뜻하는 ‘투르크 왕자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랍니다. 투르크인은 한자로는 돌궐(突厥)로 표기하며 오스만트루크제국을 건설한 전혀 다른 민족입니다. 현재의 터키공화국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풍습이 많지만, 인종이 다릅니다. 형제의 나라라고 하여 한국인에게 우호적입니다.

로마의 멸망은 훈족의 영향

흔히 우리는 로마의 멸망이 사치스럽게 발달한 로마의 목욕 문화가 원인이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찜질방이 발달한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 그만큼 사치와 향락에 빠지면 그 나라의 장래가 어둡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로마의 멸망 원인은 연구 학자들에 따라 수도 없이 많습니다. 토양의 황폐, 납중독, 기후변화, 계급투쟁, 기독교의 유입(그전까지는 그리스 신을 밑음), 귀족들의 부패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이유가 많이 있지만 (그래서 어떤 학자가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목욕탕 문화, 즉 부패와 사치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가장 큰 이유와 사실은 게르만 민족의 침략입니다. 게르만 민족이 서로마(현재의 이탈리아 로마)를 침공한 것은 훈족의 영향 때문입니다.

훈족의 왕 아틸라가 서로마를 침공하게 된 동기에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서로마 황제 발렌티아누스 3세는 여동생인 호노리아를 아틸라에게 정략결혼을 시키려 하지만, 아틸라는 결혼 조건으로 로마제국의 영토 절반을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발렌티아누스는 거절하고 여동생을 다른 사람과 결혼시켜 버립니다. 이에 아틸라가 격분하여(한국 사람처럼 꼭지가 돈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의 시작이 되고 결국 로마의 멸망으로 끝이 납니다.

아틸라는 게르만 민족(독일)이 사는 볼가 강 지역의 동고트(Ostrogoth)족을 침공합니다. 이에 놀란 6만의 서고트(Vishgoth)족이 로마 영내로 피난하기를 요청하였고 발렌티아누스황제는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식량문제로 인해 난민으로 들어온 서고트족과 로마는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 서고트족은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훈족을 피하여 이탈리아까지 피난을 갔고, 로마인들도 해안지대인 베네치아까지 피난을 가서 소리 지른 것이 바로 ‘베이네티암(Veni etiam, 나도 여기에 왔다)이라고 외쳐서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살았다’ 라는 표현이겠지요. 얼마나 훈족이 무서웠는지 단테의 ‘신곡’에도 나옵니다.

훈족의 동고트 공격으로 서고트족이 지금의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이동한 경로

고트족과 반달족(Vandal), 그리고 프랑크족은 라인 강과 다뉴브 강 지역으로 흩어져 살았고 지금의 독일 국경이 된 것입니다. 반달족은 얼마나 많은 약탈을 로마에서 했는지 지금까지 반달리즘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반달리즘이란 예술과 문화 및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로 미국에서는 주로 낙서 행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4세기경 반달족의 국가가 아프리카에 있었으며 지중해 연안까지 가서 약탈했다고 합니다.

결국, 훈족의 공격을 피해 이탈리아로 도망온 게르만 민족의 공격으로 로마는 476년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가 망한 후에도 1000년 동안 유지하다 오스만 투르크(지금의 터키)에 의해 멸망합니다. (로마는 형제가 통치하였는데 장남인 아르카디우스(Arcadius)가 동로마황제가 되었고, 차남인 호노리우스(Honorius)가 서로마황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피가 흐를지도 모르는 훈족의 영향으로 로마가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앞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실 때 또 다른 감회를 느끼실 것입니다.

훈족의 멸망

그러나 어이없게도 아틸라는 453년 게르만 제후의 딸과 결혼했는데 다음날 시체로 발견됩니다. 세계를 호령한 제왕도 여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까요? 아버지 아틸라가 죽자 아들 덴기지크가 지도자가 되지만 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훈족은 분열되어 469년 동로마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맙니다.
훈족은 흩어져 크림반도와 프랑스, 스위스 등에 정착하고 많은 인구가 합쳐져 헝가리인을 구성했습니다. 특히 루마니아의 세켈리족은 자신들의 조상이 훈족이라고 믿고 있으며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는 드라큘라(투루크)의 원조는 훈족의 왕 아틸라가 아니었을까요? 드라큘라는 1,000년 후의 사람입니다. (1431-1476)

메디치 가문의 등장

이렇게 훈족은 이탈리아를 침공한 역사가 있고 유대인은 1,000년 후 베니스에서 돈 장사를 시작합니다. 메디치는 원래 직물장사를 하다가 베니스에 은행을 세우면서 주류 사회로 편입됩니다. (1397년) 유대인은 중국인(화교)과 더불어 아프리카에서부터 남미까지 세계 방방곡곡에 퍼졌지만, 오직 한국에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보다 한국인이 더 독해서일까요? 아무튼, 지금은 바뀌었겠지만, 과거에는 화교들이 부동산을 한국에서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억척스럽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한국인들도 미국에서 막판에 부딪히는 것은 유대인입니다. 스몰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유대인의 건물주 횡포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모진 핍박과 멸시 속에 그들이 믿을 것은 오직 돈뿐이었습니다. 그들이 금융업인 은행업을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메디치는 유럽 16개 도시에 많은 은행을 설립하였습니다.

당시 메디치의 재산이 지금으로 환산하면 빌 게이츠 재산은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돈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었고 당시 환전의 가장 큰 수익은 로마 교황청이라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보내는 헌금은 로마 교황청으로 보내졌고 그 돈이 다시 각 지역으로 분배되었습니다. 메디치는 사부작하여 교황청의 환전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보내는 헌금이 다시 고스란히 프랑스로 다시 가는 것을 보고 무릎을 친 것입니다. 메디치는 프랑스에서 보낼 헌금을 로마로 보내지 않고 자기가 보관하고 서류만 교황청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최초로 온라인 송금 거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각국의 헌금을 자신이 보관하고 교황청의 분배 서류만 가지고 각국에 분배해줍니다. 사실상 돈은 움직이지 않고 서류만 움직인 것입니다. 돈을 운반하지 않으니 도난 염려도 없고 환율은 자기 맘대로 조정하여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교황청의 신뢰는 말할 것도 없고 메디치가 없으면 교황청 재정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됐습니다.

메디치 부의 사회 환원

메디치는 천문학적인 돈을 번 만큼 사회 환원도 열심이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당시의 이탈리아는 수많은 도시 국가가 있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도시 국가란 서울이 하나의 국가이고 경기도가 하나의 국가처럼 봉건 영주들로부터 독립한 것을 말합니다. 메디치는 피렌체 공화국의 국부로 추앙받았습니다. 메디치가가 오늘날까지도 명성이 높은 것은 계몽된 선각자 집안으로 단순히 재물을 자선이나 과시욕 때문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정으로 지원한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르네상스란 말은 ‘부활’이라는 뜻으로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를 재생 또는 부활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외우기 쉽게 문예부흥으로 배웠습니다.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은 인문주의(Humanism)로 인문주의는 좁은 의미로는 그리스, 로마 고전 문화를 가르치는 학풍이고, 넓은 의미로는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일어나 유럽으로 확대된 정신 운동입니다. 메디치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탈리아의 문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부르넬레스키, 단테와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등 같은 수많은 화가와 문호를 지원하여 오늘날과 같은 유명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피렌체에서 유명화가의 작품과 건축물은 메디치가의 지원이 없었으면 탄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실 분들은 유명한 그림과 건축물에서 메디치가의 흔적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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