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시대유감(時代遺憾), 백낙청과 쑥부쟁이

12.3.2012.

김지하 시인이 한국 일간지에 특별기고 형식으로 백낙청 교수에 대하여 쓴 글을 읽고 너무 실망하여 몇 자 씁니다. 먼저 김지하 시인이 쓴 글입니다.

“[특별기고]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

원주의 부론·문막 옆 손곡에 있는, 고려 이전부터 유명한 법천사(法泉寺)와 새로이 등장한 거돈사(居頓寺). 두 절 사이가 매우 가까운데도 길이 없다. 시퍼런 독초와 독거미풀만 무성하다. 법천사의 섬세·심오한 유식학인 법상종과 참선으로 일관한 거돈사의 선종(禪宗) 사이에 무엇이 가로막고 있길래? 그곳은 컴컴 칠흑 속 텅 빈 지름길 위에 못난 쑥부쟁이가 한 송이 피어 있을 뿐이다.

이 부근엔 절절한 사연을 가진 장소가 많다. 견훤이 15만 정예 병력으로 문막을 노리며 기다리던 후용. 궁예와 왕건이 수십만 대군을 부딪쳐 싸운 문막 벌판. 오대산 월정사까지 이어지는 구룡사를 비롯한 화엄 사찰들. 여성적 경제 원리의 상징인 팔여사율(八呂四律)이라는 이름의 월봉. 그 봉우리 옆에 충청도의 단강, 강원도의 섬강, 경기도의 남한강이 합수(合水)하는 ‘흥원창’.

절절한 사연을 가진 장소가 주변에 즐비하건만 법천사·거돈사 사이에는 독초·독거미풀·쑥부쟁이가 버티고 있다. 우리 문화계도 똑같다. 곳곳에 막강한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건만 독초·독거미풀에 이어 머얼건 쑥부쟁이같이 누군가 길목을 막고 버티고 있다.

싸이의 말춤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참석하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욘사마에 이어 한류의 붐이 와 있다. 한류-르네상스의 핵은 ‘시와 문학의 참다운 모심’이다. 그런데 이 못된 쑥부쟁이가 한류-르네상스의 분출을 가로막고 있다. 잘라 말한다. 자칭 한국 문화계의 원로라는 ‘백낙청’이 바로 그 쑥부쟁이다. 왜?

첫째, 백낙청은 한국 문학의 전통에 전혀 무식하다. 그저 그런 시기에 ‘창비’라는 잡지를 장악해 전통적인 민족문학 발표를 독점했을 뿐이다.

둘째, 백낙청은 한류-르네상스의 핵심인 ‘시’의 ‘모심’에서 가장 중요한 리듬, 즉 시 낭송의 기본조차 전혀 모른 채 북한 깡통들의 ‘신파조’를 제일로 떠받들고 있다. 우리 시 문학의 낭송에는 적어도 아홉 가지의 당당한 방법이 있는데도 여기에 대해선 전혀 무식하다.

셋째, 수십년 동안 창비출판사에서 단 한 번도 지나간 한국 시문학사의 미학적 탐색을 시도한 적이 없다. 무식 때문이다.

넷째, 그는 그 긴 세월을 내내 마치 한국 문화사의 심판관인 듯 행세해왔고 그 밑천을 겨우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소설가 몇 사람 공부한 것으로 내세워 왔다.

다섯째, 그의 사상적 스승이라는 ‘리영희’는 과연 사상가인가? 깡통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리영희를 앞세워 좌파 신문에서 얄팍한 담론으로 사기행각을 일삼는다.

여섯째, 그의 평론 행위는 평론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것은 공연한 ‘시비’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박경리씨의 소설 ‘시장과 전장’에 관한 평이다. 그것도 문학 평에 속하는가? 너절하고 더러운 방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발표하고도 ‘심미 의식’인가?

일곱째, 그 깡통 같은 시국담이다. 무슨 까닭인지 그의 입은 계속 벌려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벌린 입으로 과연 지하실 고문은 견뎌냈을까? 그런데 하나 묻자. 백낙청은 지하실에 가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여덟째, 계속되는 졸작 시국담에 이어 ‘2013 체제’라는 설을 내놓았다. 그것도 시국 얘기인가? 아니면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 먹은 상태인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 그러고도 ‘원로’라니?

아홉째, 백낙청은 우선 정치관부터 바로 세워라. 그런 것도 없는 자가 무슨 정치 평을 하는가? 내가 ‘깡통 빨갱이’라고 매도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 마르크스는 읽었는가? ‘자본론’은 읽었는가? ‘경제학·철학본고’는? ‘도이치 이데올로기’는?

열째, 마지막으로 묻자. 문학을 해서 날조하려는 것이냐? 본디 ‘시 쓰기’는 고통의 산물이다. 사람은 사회에서 ‘원로’ 대접을 받기 전에 먼저 삶의 ‘원로’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제 이 민족은 지난 시절을 훌쩍 벗어던지고 있다. 이번 선거의 개 똥구멍 같은 온갖 개수작들이 역설적으로, 과거가 끝났다는 증거이다. 문학자는 참된 마음으로 문예를 부흥시켜 이 나라를 ‘문화대국’으로 키워가야 한다. 이게 바로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에서 배워야 하는 테마다.

각오가 돼 있는가? 스스로를 욕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손곡 쑥부쟁이가 스스로 사라지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뜻밖에도 많다. 알았는가?” – (12.3.2012. 조선일보)

어떻습니까?
같은 글이라도 읽는 사람의 지적 수준에 따라 해석이 다를 겁니다.

그동안 김지하에 대하여 과대평가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글로 밥 벌어 먹고사는 지성인이라는 사람이 이 정도 수준의 글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이 실망스럽습니다. 김지하가 백낙청에 대하여 이렇게 열등의식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세월의 잔인함에도 안타깝습니다.

누구든 개인적인 정치 성향에 대하여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냥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했으면 깨끗이 끝났을 텐데 거창하게 법천사(法泉寺)와 거돈사(居頓寺)를 들먹이고 한류-르네상스라는 감각적 언어를 끌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이 가증스럽습니다.

백낙청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문화계 역시 정치인 버금가는 이념 다툼이 있다는 것도 새삼 놀라게 합니다. 게다가 김지하는 미학(美學)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저급스런 표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한 사람 또 있습니다. 같은 미학을 공부한 진중권입니다. 두 분 다 칼에 버금가는 언어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이 어떤 언어를 구사하든 그들의 자유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악에 받치면 이성을 잃게 되고 서푼 어치 지식의 자신감이 바로 이런 글을 쓰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읽었는가? ‘자본론’은 읽었는가? ‘경제학·철학본고’는? ‘도이치 이데올로기’는?”
이쯤에서는 많은 사람이 실소했을 것입니다.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글은 그 사람의 지적 수준과 인격을 나타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백낙청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글이 불특정 다수의 백낙청과 쑥부쟁이를 향하고 있음에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나 쑥부쟁이(들국화 일종)는 저에게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34세에 자식 일곱을 둔 청상과부가 됩니다. 돌담 하나 사이 옆집에는 어머니와 동갑인 과부 아닌 과부 어머니 친구가 살았습니다. 그녀는 평생 자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칠거지악 중 하나였습니다. 어머니 친구 남편은 노골적으로 씨받이 여인을 한 지붕 아래 둡니다. 자식이 태어나고 자식의 숫자만큼 어머니 친구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가다 못해 심지마저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단군신화가 어쩌면 그렇게 잘 맞는지 모릅니다. 곰이 여성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남자인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참고 사는 여성을 보면 분명 무언가 다른 것 같습니다. 잠 못 이루는 동짓달 기나긴 밤 어머니 친구는 사랑방 댓돌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두 켤레를 보며 남포등(lamp)을 들고 눈길을 밟습니다. 우리 집에 밤마다 마실을 오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등잔불 아래서 양말을 깁고, 밤늦도록 두 분이 깊은 한숨을 쉬어 가며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한 여인은 자식 일곱에 진짜 청상과부, 한 여인은 무자식에 과부 아닌 과부, 세상이 왜 이리도 불공평한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친구는 어머니와 이야기하면서도 온갖 신경은 자신의 집 사랑방에 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자식을 갖지 못하는 형벌만큼 잔인한 것은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대화는 끝이 없었고 어린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한 많은 두 여인의 깊은 한숨이 동짓달 기나긴 밤 겨울로 가는 눈과 함께 쌓여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귀에 쏙 들어온 말이 있었습니다.
“들국화 뿌리를 삶아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나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다음날 산으로 가 마른 가지의 들국화 뿌리를 캐다가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삶아 먹고 동생을 낳아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막내라서 위의 형 누나들과 나이 차가 많아 함께 놀아주지 않아 동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 어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당시의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을 생각했습니다. 눈물반 웃음반으로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을철 산에 가면 들국화를 보면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쑥부쟁이는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 여인의 한을 안고 피어난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는 못난 쑥부쟁이로 보이지만, 누구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생명이기에 함부로 가시 돋친 글로 상처를 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생명사상 운동을 주장하는 김지하 시인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의 장모인 박경리 선생이 1964년에 쓴 “시장과 전장”의 작품을 백낙청이 신동아에서 평론한 것을 ‘시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김지하는 백낙청에 대한 열등의식을 느꼈음직합니다. 특히나 1966년 창간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정황과 맞물려 민주화를 열망하던 지식인 사회의 통로 역할을 하였던 창작과 비평(창비, 2003년 사명을 바꿈)을 폄하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특히 김 시인은 백낙청이 창간한 창작과 비평에 여러 차례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1982년 발표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판했습니다.

“시장과 전장”을 젊은 시절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 때 상당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게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군사혁명 세력이 감옥에 보내지 않은 것을 보면 박경리 선생이 북한 출신이고 한국전쟁은 북쪽이 남침을 먼저 했다는 것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래된 기억이라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으나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인 제자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인 스승 간의 이데올로기를 시장이라는 현실을 접목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백낙청은 “시장과 전장”을 “피상적 기록에 그친 6․25 수난”이란 제목으로 비평하여 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다음 해 창작과 비평을 창간하여 편집인이 됩니다. 장모의 글을 피상적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만만한 게 홍어×이라고(이 언어는 제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고 지적인 정치인의 전문용어입니다.) 툭하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깡통’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심히 유감입니다. 학벌이 다가 아니지만, 자신보다 학력과 학벌에서 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깡통이라니 자신은 드럼통이라서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지하 시인이 백낙청 교수께 한 말을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사람은 사회에서 ‘원로’ 대접을 받기 전에 먼저 삶의 ‘원로’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사람은 사회에서 대접을 받기 전에 먼저 상대를 대접해야 하는 법입니다.

1991년 ‘죽음의 굿판론’을 들고 나올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하긴 2008년 황석영이 변절자로 몰려 공격을 당할 때도 “작가라면 좌든 우든 왔다갔다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고, 작가라는 것이 아침마다 변한다. 기억력이 강한 작가일수록 엉터리다.”라고 했을 때는 고문의 후유증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왜 손학규 옆구리를 찔러 한나라당을 탈당하게 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김지하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김대중, 노무현은 권력을 잡았을 때 왜 청와대에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가?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고 국민의 세금으로 쓰는 것인데 왜 여러 사람을 대접하지 않았는가? 김동길은 김영삼과 냉면 먹고 얼마나 행복해했는가? 바보들아, 문제는 대접이야!

정치가 무엇이길래 먹었던 우물에 침을 뱉고 떠나는가?
세월이 잔인합니다. 때로는 치매로 과거를 지우기도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언젠가는 세월 앞에 무릎 꿇고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더는 추해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시간아 고맙다.
네가 나를 위로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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