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9.22.2012.

책 제목입니다. 원제는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캔사스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입니다.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토마스 프랭크가 1990년대 이전까지는 진보세력과 민주당의 표밭이던 미국 중앙부인 캔사스주가 지금은 어떻게 보수우파인 공화당의 아성이 됐는지 연구했습니다.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입니다. 캔사스를 비롯한 미국 내륙 주들은 상대적 빈곤지역입니다. 산업생산시설보다 농업생산이 많습니다. 물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모두 가난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미국의 농업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그런 농업이 아닙니다. 기업화되어있고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가난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아니기에 전체적으로 소득이 낮은 지역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중부 내륙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캔사스는 미국의 축소판이랍니다. 미국 경제의 모든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캔사스시티 외곽의 부자 동네 존슨 카운티에서는 사무직노동자들이 라떼를 마시면서 사업계획을 짜고, 위치토에서는 노조에 가입한 육체노동자들이 항공기를 제작하는 공장에 다닌답니다. 가든시티에서 서쪽으로 벗어나면 저임금의 이주민 노동자들이 소를 도축합니다. 그 중간지대에서는 농민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옥하고 곡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농사를 짓습니다.

캔사스는 레이건과 부시 정권이 밀어붙인 규제 철폐와 민영화, 자유방임 정책으로 병들었답니다. 농촌인구는 감소하고 소도시는 해체되고 대도시들은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보안장치가 설치된 원격 제어 대문 안에서 화려한 삶을 영위합니다.

“2000년 미국에서 보수 대반동을 일으켰던 공화당의 주도 세력은 과거 전통적인 미국의 보수 중도파와 달리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우파였다. 이들은 캔사스 민중의 불만과 우려를 기독교 근본주의와 절묘하게 결합해 공격의 화살을 모두 자유주의 민주당과 지식인들에게 돌렸다.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 지역의 피폐함이 경제 구조와 그에 따른 계급 문제임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피한 채 낙태와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와 같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문화 현상에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킨 것이다. 기독교 우파는 결코 경제 문제를 정치 의제로 내세우지 않는다.”

존슨 카운티와 쇼니, 위치토 등 민주당 표밭이던 캔사스 인구밀집 지역 중하층 블루칼라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기 시작한 계기는 낙태 반대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공화당 우파가 끌어들인 보수 기독교 우파는 낙태 반대, 진화론 교육 반대, 동성애 반대, 줄기세포 연구 반대, 생태주의와 수돗물 불소화 반대 등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쳤고, 이는 중하층의 경제적 곤궁이라는 현실을 그들 뇌리에서 지우고 미국 사회 쟁점을 도덕과 윤리 논란으로 몰아갔습니다.

러시 림보 같은 극우 방송인과 위클리 스탠더드, 폭스, 워싱턴 타임스, 등 네오콘 선전지들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류 신문 방송들도 가세했습니다. 이 매체들에 등장한 논객들, 그들에게 자료나 논거를 제공한 수많은 연구소와 재단, 싱크탱크, 대학, 잡지, 신문, 출판사들을 공화당 우파는 1960년대부터 대기업 자금을 대거 동원해 문화전쟁의 무기로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키웠습니다.

“기업과 보수 거대교회의 유착은 중하층의 삶이 불안하고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문화가 타락하면 할수록 더 단단해지고 더 크게 번성하는 구조다. 삶이 피폐해질수록 사람들은 위안을 찾기 위해 교회로 달려갈 것이며, 교회가 번창하면 그들과 손잡은 대기업들도 번성한다.”

“이에 비해 대책 없이 거들먹거리던 민주당과 리버럴은 전통적 지지자들과의 적절한 관계 맺기에 실패했다. 블루칼라 유권자들을 내팽개친 그들은 대신 자유주의적 성향의 화이트칼라 전문가들을 끌어들이는 데 역량을 집중했고 기업들에 열심히 구애했다. 그들이 노동조합보다 더 많은 선거 자금을 내놨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휩쓴 미국 중서부 내륙은 지금 민주당과 리버럴만 몰락한 게 아니라 지역 경제와 사회가 급속도로 망가지고 일부에선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저자 토마스 프랭크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캔사스 주를 중심으로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여러 풍경과 마주칩니다.

“애국심에 불타는 건장한 공장노동자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암송하면서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다. 가난한 소농들은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진다.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은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한다. 중서부 도시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공업도시로 만들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낸다. 그곳이 바로 캔사스다.”

이 책은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발간되었는데, 당시 저자가 걱정스럽게 짐작했던 부시의 승리도 적중했습니다. 이 책은 발간된 후 장기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획기적으로 선거 대비용 책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기도 하답니다.

이 책에서 캔사스를 빼고 한국을 집어넣으면 아주 비슷합니다. 한국이 미국과 다르다면, 북한과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념과 사상문제를 선거 때마다 써먹는 것입니다. 종북 좌파 빨갱이입니다.

이 책을 한글로 옮긴 이 김병순 씨는 “지난 4·11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해묵은 이념 논쟁, 세대 갈등과 성차별을 부추기는 막말 논란은 정작 중요한 정책 논쟁은 뒷전으로 내몰았다”며 “정권 편향적인 공영방송과 강력한 주요 보수 언론, 매우 정치적인 보수 기독교계가힘을 모아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행태는 프랭크가 책에서 묘사한 미국 기독교 우파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보수파의 벤치마킹 능력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망각을 잘하는 한국인이라도 지난 4.11 총선에서 ‘나는 꼼수다’의 소위 김용민 막말을 조중동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후보 사퇴를 종용하며 날마다 대서 특필했던 기억은 하실 것입니다. 국민의 눈을 정책 선거에서 인신공격으로 바꿔 도덕성에 타격을 주는 작전이었습니다.

“극우적 성향의 보수 우파와 기독교, 수구 언론이 결탁할 때 그리고 진보 세력이 경제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계급 문제를 도외시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계산기만 두드릴 때, 민중들은 경제 상황이 악화할수록 점점 더 냉소적이 되고 훨씬 더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성인 남녀 800명을 상대로 여론 조사한 결과, 스스로 경제적 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가운데 26.8%가 자신의 정치성향을 보수라고 답했답니다. 자신이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상층에서 21.6%, 중층에서 19.1%로 나타났습니다. 보수 성향의 비중이 중간층·상류층보다 빈곤층에서 더 높은 것입니다. 내가 정치에 참여(선거)하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답니다. 경제적으로 하층민일수록 정치적 효능 감은 더욱 낮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고 오지 않는 미래보다는 오늘 하루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에게는 오늘 그저 무사히 잘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소농이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은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지는지도 모릅니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학)는 저소득층의 보수화 현상에 대해 “자신의 처지에서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는 소외계층은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자아정체성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강력한 국가를 표방하는 보수정당이 자아정체성을 찾는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정 교수는 또 “소외계층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두고 연탄 한 장이라도 주는 쪽을 선호하게 돼 있는데,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보수 정치인의 존재가 이들에게 매력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래 그림으로 미국과 한국의 투표성향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 보십시오.

                            (크게 보시려면 사진을 한 번 클릭 하십시오)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은 모두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부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자보다 서민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주주총회처럼 돈 많은 사람이 표가 많지 않고 1인 1표이기 때문입니다.

투표는 자유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보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고 부자라고 해서 진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투표를 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왜 가난한가? 부자를 위해 투표하니 가난한 삶을 사는 겁니다. 선거 때만 서민을 팔지만, 정권을 잡으면 역시나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펴기 때문입니다. 상위 1%가 부를 창출하고 그들의 돈이 서민에게 돌아간다는(Trickle Down 효과)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부자로부터 정치자금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또다시 자해 투표를 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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