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아깝다, 박근혜

7.20.2012.

언어는 사상(思想)을 지배하고, 사고(思考)의 표현이 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모국을 떠나서 작품 쓰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솔제니친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하버드 대학 연설 중 “공산주의는 치료할 수 없는 미치광이 병”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으면서도 결국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가 삶을 마감했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작가 이문열 씨도 이곳에서 몇 년 전 작품을 쓴다고 백팩을 메고 돌아다니더니 특별한 작품은 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속에 생각과 지식이 나타납니다. 며칠 전 사실상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자신의 정치 철학과 역사관을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까워 글을 씁니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조그만 일 하나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고 했습니다.

20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사건 중 하나인 독일 통일도 정부 대변인 말 한마디 실수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모두다 아는 사실입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의 군터 샤보스키 신임 공산당 대변인은 새로 바뀐 여행법에 관하여 TV 인터뷰를 하다가 기자로부터 대본에 없는 질문을 받습니다.

기자: 동독인들은 언제쯤이나 자유롭게 서유럽을 여행할 수 있을까요?
샤보스키: 동독 사람들은 원하면 아무 데나 갈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 그럼 그 법은 언제부터 발효됩니까?
샤보스키: (사실 샤보스키는 법안의 내용을 잘 몰랐습니다. 서류를 뒤적이던 샤보스키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TV를 시청하던 수천 명의 시민이 국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장벽을 해머로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쉬운 설명을 위하여 예를 들겠습니다. 글을 위하여 꼭 필요하므로 복잡한 소련(러시아) 정치 역사를 간단히 언급 합니다. 스탈린이 소련의 독재자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볼셰비키 당을 통하여 레닌을 뒤이어 정권을 잡습니다. 우리는 흔히 볼세비키 혁명이라고 배워서 볼셰비키가 누군가 하기도 합니다. 볼셰비키라는 말은 러시아어로 “다수파”라는 말입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분파입니다. 소수파를 “멘셰비키”라고 했습니다. 쉽게 한국 같으면 여당 또는 야당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레닌은 스탈린을 키우면서도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라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서에도 스탈린에게 정권을 넘기지 말라고 밝혔습니다. 피의 보복과 숙청을 예감했던 것입니다. 레닌의 우려대로 스탈린은 수백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심지어 말년에는 자신도 암살이 두려워 누구도 찾지 못하는 자작나무 숲 속에 비밀 별장을 지어 살다가 미로 같은 구조 때문에 담당 의사도 없이 혼자서 죽어갔다고 합니다. 독살설도 있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많이 있지만, 독재자도 결국은 죽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스탈린은 레닌의 정책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레닌은 시장경제를 일부분 수용한 준 자본주의적인 신경제정책을 폈지만, 스탈린은 국가가 직접 기간산업을 관리하는 국영산업화 정책을 폅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입니다. 한국의 60, 70년대에 귀아프게 들었던 경제구호입니다. 이는 후에 중국의 모택동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8년에 추진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이 스탈린이 추진한 경제개발 계획과 유사하다며 거부하였으나, 미국의 원조가 끊기면서 식량과 경제사정이 악화하자 어쩔 수 없이 경제개발계획을 수용했습니다. 10월 유신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따라 한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가 산업을 관리하게 되면 독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 독재 결과 재벌이 탄생했고, 정치 독재는 많은 희생자를 가져왔습니다. 그 후유증이 커서 아직도 한국은 은행장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은행이 정부 소유가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재벌문제는 심각해 여야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스탈린은 한국의 역사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칩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북한의 지도자를 선정하는데 박헌영과 김일성을 수시로 불러 지도자 자격을 심사했습니다. 결국, 김일성으로 결정하였는데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켜 남침하게 됩니다. 스탈린은 무려 48회나 김일성에게 남침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나자 중국과 함께 뒤에서 조정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스탈린이 박헌영을 선택했다면 한국의 역사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한국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경제발전 이론의 토대를 제공한 스탈린이 한국에 영향을 많이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한가지 또 있습니다. 일본의 꼭두각시 국가인 만주국이 세워져서 연해주의 안보가 위험해지자, 스탈린은 1937년에 여기에 살고 있던 고려인(우리 한민족)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습니다. 이 내용은 눈물로 기록해도 부족할 만큼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엄동설한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 팽개쳐진 우리 민족은 땅굴을 파고서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한여름 때약볕이 내리쬐는 길 위의 밟아도 죽지 않는 질경이처럼 모질게 살아났습니다.

이스라엘은 한국인과 똑같이 이렇게 당한 유대인을 국가에서 지원해서 지금은 대부분 잘살고 있다고 합니다. 잘 사는 대한민국 정부는 툭하면 외교 문제라는 말만 하면서 외면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우리 고려인 중에는 국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소련인도 아니고 현재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으므로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탈린은 우리 민족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스탈린에게는 딸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딸입니다. (첫 번째 부인은 결혼 16개월 만에 병사) 이름은 스베틀라나. 아들이 있었지만, 딸인 스베틀라나를 너무나 예뻐했다고 합니다. 지금 같으면 딸 바보라고나 하겠지요. 그런데 이 딸이 아버지와 결정적으로 멀어진 계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6살 때 어머니의 사인이 자살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탈린은 1932년 혁명 기념만찬에 참석했다가 만취상태로 공개석상의 여러 사람 앞에서 두 번째 부인 나데즈다에게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모멸감을 느낀 나데즈다는 바로 파티장을 뛰쳐나갔고, 그날 밤 스탈린의 인간적인 결점과 정치적 실패를 비판하는 서신을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딸, 스베틀라나의 첫 사랑의 실패도 아버지와 멀어진 계기가 됐습니다. 첫 사랑의 상대는 유대인 시나리오 작가였습니다. 스탈린은 딸의 상대인 알렉세이 카플레르를 여러 번 총살하려고 했으나 딸의 심적 충격을 우려해 강제수용소에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스탈린은 1953년 사망하고 딸은 1967년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스베틀라나는 미국 공항에서 표현의 자유를 찾아왔다고 밝히고 공개적으로 소련 여권을 불태워 냉전이 낳은 스타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잘 사는가 싶더니 1984년 전 남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과 딸이 있는 소련으로 돌아가 소련 국적을 회복했습니다. 그녀는 소련에서 “미국에서 하루도 자유로운 날이 없었다”며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련 당국과의 불화로 2년도 못 돼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위스콘신주에서 85세의 나이로 지난해 사망했습니다.

지금까지 스탈린과 그의 딸 스베틀라나에 대하여 길게 설명한 이유가 이제 나옵니다. 바로 그녀가 쓴 책입니다. 제목이 “스베틀라나의 고백”입니다. 이 책에서 스베틀라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독재할 때, 여러분은 왜 침묵하셨습니까?
그건 공모입니다.
나도 아버지가 잘하는 줄 알고 침묵했습니다.
나도 공모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에 대한 비판과 욕을 나에게 하십시오.”

“우리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입니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습니다.”

반면, 박근혜 의원은 며칠 전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불안한 경제, 안보 상황을 볼 때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분들도 있는 만큼 이 문제를 놓고 옳으니 그르니 하기보다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5.16을 군사혁명으로 배웠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여기서 혁명과 쿠데타에 대해서 뜻만 알면 역사가 어떻고 하는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쿠데타(Coup d’etat)란 말은 프랑스 말입니다. 나폴레옹이 무력으로 권력을 잡고서 권력은 총검으로 실현되는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영국인들은 소수 군인에 의한 체제 전복이란 격정적인 프랑스인들에게나 있는 일로 여겼기 때문에 아예 영어로는 쿠데타라는 말이 없습니다.

반면, 혁명은 원래 회전한다는 뜻인 레볼루션(revolution)이 혁명이란 의미를 갖게 된 건 16세기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늘 아닌 땅이 돈다고 믿었던 그가 지동설을 설파하면서 낸 논문 제목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였습니다. 이 이론이 워낙 충격적이라 회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revolutio”는 기존 상식이나 체제를 뒤엎는다는 의미로 변질됐답니다. 이게 영국으로 전파돼 레볼루션 역시 혁명을 지칭하게 된 거라고 합니다.

뜻을 알고 보니 쿠데타니, 혁명이니 따진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군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일으킨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군사 쿠데타입니다. 쿠데타란 군사반란입니다. 합법적으로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총칼로 뒤엎고 권력을 찬탈한 것을 말합니다. 혁명은 국민이 궐기해 불의한 정권을 몰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4.19를 쿠데타라고 하지 않고 혁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5.16을 쿠데타라고 할 수 없으니 5.16 혁명이라고 하면서 4.19를 의거로 낮춰 부르게 한 것입니다.

박근혜 의원이 스탈린의 딸처럼 말을 했다면 안철수가 아니라 더 한 사람이 야당에서 나온다 해도 차기 대통령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 스스로 역사관과 정치 철학의 부재로 좋은 기회를 놓칠 것 같습니다. 지지부진한 야당 후보에다 조중동은 날마다 종북좌파 타령으로 전후방에서 지원해 주는 꽃놀이 패인데 아깝습니다. 바로 대세론에 함몰된 결과입니다. 주변 참모 교수들도 난감할 것입니다. 이제 뒤늦게 깨닫고 말을 조금씩 바꿔 갈텐데 말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박근혜 개인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역사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미 쿠데타로 만들어진 유신 헌법이 잘못되었다고 폐기하고 1987년에 개정되었습니다. 유신 헌법 전문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를 삭제한 헌법으로 개정한 것은 역사적 판단이 끝났다는 얘기입니다. 대한민국 개정 헌법 전문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굵은 글씨체로 표시해놓은 부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正統性)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요즈음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이 건국의 아버지라고 복권을 시도하는 4.19로 쫓겨난 이승만에 있지도 않고, 더더욱 이완용을 추종하는 친일파에게도 있지 않습니다. “5.16 군사혁명”에도 있지 않고 “10월 유신”에도 있지 않습니다. 3.1 운동과 4.19 이념을 정통성으로 이어받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쫓겨난 사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대한다는 것은 헌법 전문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탱크로 밀어버린 유신헌법의 5.16 혁명이란 표현은 박근혜 의원의 표현처럼 “불가피하게” 역사가 지워 버렸습니다. 이완용도 전두환도 “불가피하게” 했을 것입니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역사를 자주 들먹거립니다. 역사에 불가피라는 말은 없습니다. 역사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상에 입각하여 신라 위주로 소설처럼 썼기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서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공기를 통하여 그대로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방송을 “AIR”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말입니다. 이미 늦었지만, 박근혜 의원은 겸허하게 객관적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다시 공부 하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박정희를 아버지가 아닌 전직 대통령으로 보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역사를 왜곡시키지 말고 독재자 스탈린의 딸이 어떤 사고를 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아주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박근혜 의원 주변에는 올바른 역사와 정치 철학을 가진 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감투 욕심에 모여드는 불나방이라면 한국의 장래는 어둡습니다.

아버지 박정희 정권하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말로만 죄송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진정성을 국민이 인정합니다.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MBC 문화방송 등 박 전 대통령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영리 또는 비영리 재단을 정리하여 국가 인권위원회와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조사 발표한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만들어 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해 줄 때 진정으로 화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 석 자도 쓸지 모르고 남도의 외딴 섬에서 고기 잡아 연명하면서 욕심 없이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간첩으로 잡혀가 “빨갱이”로 몰려 평생 주홍글씨를 가슴에 안고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과 그 후손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도 일부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은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정수장학회 등) “봉급쟁이”만 했으니 나하고는 관련이 없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국민을 또 속이는 겁니다. 직계 자손도 없고 남은 인생 무슨 욕심과 돈이 필요하십니까? 대통령보다 명예로운 감투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래야 국민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지금의 박근혜에 대한 지지율은 허망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야당의 후보가 단일화되어 일대일이 되면 일장춘몽이 됩니다.

정치는 국민을 눈속임하는 상품이 아닙니다. 광고판에서 돈 벌어먹은 사람들 데려다 슬로건이나 만들어 국민을 또다시 속일 생각을 마십시오. 이 대통령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이성개와 세종대왕까지 팔아먹으며 아부하는 간신 보따리 정치 장사꾼들을 멀리하십시오. 이 말 한마디면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됩니다. 진심으로 눈물로 국민께 고백하십시오. 국민의 마음이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저도 공범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유신 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제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습니다.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독재정권의 피해자를 위하여 뉘우치며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고, 국민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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