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진화하는 경제학

4.20.2012.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지금까지의 고전 경제학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경제학의 대가들도 세계 경제의 총체적 부실로 학문의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러한 학문을 과연 사회과학의 진리라고 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우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경제학의 역사를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경제의 부침에 따라 경제학이 어떻게 발전하고 적용되는지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편하게 쭉 읽으시면 이제부터 어려운 경제학이 여러분의 산 지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근대 경제학의 시초는 1776년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주류 경제학의 기본 이론은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명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정확한 계산, 합리적 판단,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완벽한 인간, 다시 말해 인간은 손해 볼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가만히 두어도(작은 정부)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스스로 움직여 경제가 발전해 간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값이 너무 비싸지면 사지 않으므로 스스로 값을 내릴 것이고, 공급이 부족해 값이올라가면 공급을 늘려 수요 공급을 맞춰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 이후의 경제학자들은 “모든 사람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라는 가정하에 경제 이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말을 쉽게 한마디로 한다면 “모든 사람은 인센티브(Incentive, 성과나 능력에 따른 보상)에 반응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합리적인 인간을 바탕으로 고전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 한계비용, 한계생산 등 한계 개념을 통해 소비와 생산의 균형을 수학으로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수리 경제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1929년 발생한 세계 공황은 고전 경제학에 타격을 주게 됩니다. 시장에 맡겨두니 공황이 온 것입니다. 전쟁이 영웅을 낳는다고 이때 케인스가 나타납니다. 영국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투자는 저축이 아니라 기업가의 “동물적 본능”에 의해 결정 되며, 물가와 임금은 신속히 조절되는 게 아니라 오르기는 쉽지만 아래로 떨어지기는 어려운 하방경직성(下方硬直性)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방경직성이란 이미 오른 것이 잘 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은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의 균형점에서 임금이 결정됩니다. 노동공급이 많으면 임금이 내려가고 노동수요가 많으면 임금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때 노동조합이 생긴다면, 노동공급이 많다고 해도 임금은 이전처럼 쉽게 내려가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노조가 생기면 임금이 하방경직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또한, 특정상품이 독과점 품목일 경우도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습니다. 삼성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케인스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고전학파 이론을 비판하며 시장을 믿고 있다가는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려면 거둬들인 세금보다 더 많이 지출함으로써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현재 오바마 정부의 경제 정책을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른바 “뉴딜 정책”에 반영되면서 30년 이상 경제학의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1970년대 이후부터 세계경기가 침체하고 중동 산유국들이 담합하여 석유 가격을 올리자 경기 침체기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됩니다. Stagflation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거시 경제학에서 고 물가(인플레이션)와 실직, 경기 후퇴(스태그네이션)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를 뜻합니다. 이 경우 총공급이 줄어들어 물가가 오르고 GDP가 후퇴하며 이 결과로 투자 위축이 발생하여 실업률이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FRB가 QE3를 함부로 실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달러를 더 풀게되면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상승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지출을 줄이면 경기를 침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면(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게 되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때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카를 브루너, 앨런 멜처, 슈워츠 등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철학을 계승해 화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 이론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발생했다고 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부가 가능한 시장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애덤 스미스의 고전 경제학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예상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합리적 기대이론”입니다. 합리적 기대이론은 밀턴 프리드먼의 제자인 로버트 루커스 시카고대 교수에 의해 집대성 되어 시카고학파를 이루게 됩니다. 시카고학파 이론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 경제정책의 근간이 됐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의 개막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감정적이고 모순덩어리인 인간의 럭비공 같은 경제행태를 간과하였습니다. 바로 “제멋대로 생각하는 갈대”라는 것을 간과하였기에 애덤 스미스 이래의 주류경제학은 빛나는 이론적 정합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과는 괴리를 보여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탐욕(Greed)”입니다.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이기에 탐욕에 젖어 스스로 제 꾀에 넘어가 스스로 타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금융공황 경제입니다. 금융공학이라는 이름으로 물리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인재들을 데려다가 개발한 자신들도 잘 알지 못하는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결국 자신들이 망하고 만 것입니다. 신용이 낮은 주택 담보 대출금을(서브프라임) 뻥튀기하여 상품을 만들고 서로 폭탄 돌리기로 사고팔고 하다가 주택경기가 식자 스스로 몰락한 것입니다.

인간은 적이 없습니다. 유일한 적은 인간 자신의 욕심입니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몰락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손쉽고 편리한 에너지를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내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핵무기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보다 인간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만들어가는 모든 것들로 인해 인간은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일본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자연재해로 지진이 났다 할지라도 인간이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재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 2008년 불경기 때문에 고전 경제학을 기초로 한 시카고 학파의 이론이 사라지고 다시금 케인스 영령이 나타나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우리 집 앞에 돈이 떨어질지 목젖이 넘어가도록 하늘 쳐다보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인의 현실입니다.

뉴스위크(Newsweek)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간 세계 경제학계를 지배해 온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더는 옛날의 권위를 잃었다. 경제 주체인 인간을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찾으려는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모든 이론 모델을 세워 왔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아님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애틀랜타에서 열린 전미 경제학회 총회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제 참가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전제가 오류였다. 경제 주체들의 현실적인 행동에 근거하는 새로운 경제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기본 전제를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갈증과 필요성을 주류 경제학자들이 선언한 셈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입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다니엘 카너만(Daniel Kahneman, 1934~ ) 교수는 “행동경제학” 공로로 미국 조지 메이슨대학 버논 스미스 교수와 함께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라는데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선 인간이 기존의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류 경제학과 반대입니다. 근대 경제학은 사람들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철학적인 것을 전제로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물건을 파는 두 가게가 있다고 하면 소비자는 물건을 비교한 뒤 자신에게 알맞은 제품을 산다는 합리성이 전통적 경제이론입니다.

하지만 카너만은 소비자의 구매결정이 감정적이며 주먹구구식이라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즉, 비슷한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다면,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물건이 더 좋은가 하는 게 아니라 가게의 주인과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게 더 중요한 구매 결정요소라는 것입니다. 물건값이나 품질과 관계없이 좋아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제행위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라고 봤습니다.

일찍이 우리 미주 한인은 이런 이론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값싼 대형 마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싼 리커스토어를 경영하면서 성공한 이유는 소비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며 친절하게 하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감성적 마케팅입니다.

여기에 최근 끝난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고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 잘할지가 아니고 누가 우리 지역 어느 당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벌써 모 당에서는 두 당선자를 탈당시켰습니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지역주민이 감정적으로 당선시킨 결과입니다. 국회의원 자격이 박탈된다면 선거를 다시 해야 합니다. 전혀 경제적이지 않고 합리적 이성이 아닙니다. 이성적이 아니고 감정적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감정에 치우치고 바보 같은 소비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시장에서 콩나물이나 두부를 살 때 몇백 원을 깎고 더 달라고 하면서 백화점 명품 브랜드는 표시한 정가대로 삽니다. 배고플 때 시장에 가면 평소보다 더 많이 삽니다.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급하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써버립니다.

행동경제학은 이렇게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에 주목 했습니다. 학문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접목되어 이득을 주는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국도 최근 퇴직연금제도의 기반이 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을 개정해 행동경제학자의 의견을 대폭 수용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퇴직연금제도의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에 변화를 준 것입니다. 디폴트 옵션이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았을 때 자동으로 특정 사항이 선택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전세 계약을 1년 했는데 임차 대인이 아무 말 없으면 자동으로 1년이 더 연장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은 이 같은 사람의 심리를 감안했습니다. 특히 디폴트 옵션에 변화를 준 것은 근로자로 하여금 더 많이 저축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 직장을 옮길 때 근로자가 퇴직연금을 받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지금까지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 ‘개인형 퇴직계좌'(미국은 IRA)를 지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퇴직금에서 퇴직소득세를 공제하고 남은 돈을 현금으로 일시에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근로자가 6개월 이내에 개인형 퇴직계좌를 개설한 다음 여기에 퇴직금의 80% 이상을 적립하면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주머니에 들어온 돈을 다시 반환하려는 근로자가 많이 있겠습니까? 퇴직하여 소득도 없는데 그 돈을 다 쓰고 말 것입니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퇴직금을 받아 써버리면 퇴직금을 통한 노후소득 보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 개정된 내용은 근로자는 직장을 옮길 때 의무적으로 개인형 퇴직연금을 개설해야 하고, 여기에 퇴직연금을 강제로 이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디폴트 옵션입니다. 눈앞의 현실만 보는 인간의 나약함을 법 규정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근로소득자는 연말이 되면 소득공제를 받고자 각종 영수증을 챙기고 서류를 떼느라 바쁩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세금을 일부 돌려받으면 공돈이 생긴 것처럼 기뻐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연말정산이란 매달 월급을 받을 때 세금으로 낸 돈 가운데 일부를 돌려받는 것으로, 공돈이 아닌 자기 돈이기 때문에 기뻐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자를 받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해야 합니다.

이렇게 오류가 많은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이 행동 경제학입니다. 디폴트 옵션처럼 초기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몇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운전면허증에 장기(臟器)기증의사를 표시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이나 미국인 가운데는 장기기증 의사표시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반면 스웨덴,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는 전 국민의 90% 이상이 장기기증 카드를 소지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일본이나 미국 사람은 박애 정신이 없고 프랑스 사람은 박애 정신이 넘쳐서 그런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고 본인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장기기증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초기 설정을 그렇게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팔 때 기본사양에 옵션을 추가하는 경우와 풀 옵션에 불필요한 것을 뺄 수 있도록 한 경우 자동차 옵션 수가 크게 다르게 정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치입니다. 이처럼 주어진 상황을 사람들이 처음에 어떤 틀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선택하는 것을 카너만은 ‘프레이밍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와 다를 게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와 이성을 믿고 싶어 하지만 실제론 나약하기 그지없어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그의 결론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찬찬히 따져보면 뭐가 옳고 얼마나 이득인지 충분히 알 만한데도 내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그르친 적이 사람마다 몇 번은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만 끌리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마켓에서 물건을 카트에 가득 담아 구매를 끝내고 계산대로 향하면서 계산대 옆에 있는 초코릿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집어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모순덩어리인 인간의 심리를 접목하지 못한 주류 경제학이 현대 경제에 맞지 않는 이유입니다.

애덤 스미스 할아버지가 자신보다 150년 전에 파스칼 할아버지가 말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의미를 깊게 이해했다면 더욱 완벽한 학문으로 정립이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마도 이해했을 것입니다. 단지 “인간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갈대”로 이해했을 것이고, 200년 후 카너만은 “인간은 제 맘대로 생각하는 갈대”로 이해했기에 심리학을 경제학에 접목하는 놀라운 이론을 정립하는 성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물리학자, 화학자, 그리고 경제학자 3명이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먹을 게 없던 그들 앞에 조그만 수프 캔이 파도를 타고 떠내려왔습니다. 이것을 본 물리학자는 이것을 돌멩이로 내리쳐서 땁시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화학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불을 지펴서 열을 가열하면 열립니다, 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음, 여기 캔 따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날 밤 경제학자는 수프를 먹었다고 가정하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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