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함께 혼자 살기

9.10.2017

오늘날 자본주의는 인간의 물질 쾌락과 정신 탐욕을 최대한 충족하였지만, 반대로 인생의 무게로 넘어진 사람은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무슨 말로 위로한다 해도 가난은 슬픈 것입니다. 특히 나이든 세대는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자식 때문에 정작 자신은 준비 없이 세월만 보내고 말아 더욱 안타깝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에 걸리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울증을 ‘우울병’으로 고쳐 부르고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우울증은 영혼을 갉아먹는 정신 암입니다.

한국은 세대 간의 심적 갈등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원인이 나이에 따라 서열화했던 우리 세대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첫 만남부터 나이 물어보고 위아래를 따지는 문화가 결국 젊은 세대로부터 차별 받게 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이 든 것이 결코 부끄럽거나 차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탄광에서 베트남의 전쟁터에서 열사의 나라 중동의 사막에서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에 눈시울 붉혀가며 난닝구 빤쓰 빨며 견뎌낸 베이비 부머들에겐 영광의 날들이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겐 그저 부모들이 먹고살려고 했던 일들의 하나라고 이해한다는 현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

이를 영화로 만든 감독은 배우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어진 상(賞)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罰)이 아니다.”

저는 안경이 없으면 글을 읽지 못합니다. 수십 년을 컴퓨터 화면을 보고 지내는 직업이다 보니 노안이 되어 안경을 착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노안이 되니 비로소 보이는 문장과 글이 많아지게 되고 참 사람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손수건으로 때로는 안경을 닦지만, 주 용도가 남에게 빌려주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각 단계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늙어 보이거나 젊어 보이지만 이 격차가 노년에 이르러서는 유독 커진다. 우리는 71세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비틀거리거나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다고 충격을 받지 않지만 71세 노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거나(트럼프를 말한 듯) CEO로 일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니 중년에 잘 나간다고 뻐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 나이 들어 삶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병 들거나 사고를 당하는 것이 모두 노력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노년의 품격 있는 삶은 운도 많이 작용한다. 그러니 겸손함으로 드라마틱한 노년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마이클 킨슬리의 책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에서

결국 인간은 어떻게 늙어 왔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우리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입니다. 중년에 성공한 많은 사람이 고등학교 때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인의 삶에 들어가면 이전까지 중요하게 여겨지던 가치가 변해 새로운 판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부처럼 우연을 가장한 인연도 있고 자식처럼 인연과 필연의 합작도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닫힌 방”이라는 희곡에서 ‘타인은 지옥이다’고 말합니다. 사르트르가 타인의 시선을 지옥으로 보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참된 나를 찾는 데 방해 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외모를 보는 거울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비춰볼 수 있는 내면의 거울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에 들어서기 위해서, 그 관계가 의미를 생성할 수 있으려면 자신을 규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인 거울이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타타타’라는 노랫말에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고 합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쓴 가사를 이렇게 바꿉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질 문제는 타인과 외로움을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 더는 자유로운 자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외면하고 혼자가 되는 순간 나의 자아는 외롭다.’ 함께는 괴롭지만, 혼자는 외로운 게 인간의 조건이기에 ‘함께 혼자 살기’를 주장 합니다.  인생이라는 미지의 길은 결국 혼자서 가야 합니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 헤르만 헤세 ‘혼자’

타인의 시선은 지옥입니다. 유행 따라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는 어디 나오고 강남 사는지 강북 사는지 구분하고 아파트 평수 따지는 것 등 모두 타인의 시선입니다.  군중 속에서 사이버 세계 속에서 수많은 인연과 함께하였지만, 결국 우리는 마지막 길에서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현실을 접하게 됩니다. 저는 고독과 외로움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남이 나를 멀리하면 외로움이지만
내가 남을 멀리하면 고독이다
외로움의 고통은 론리니스(Loneliness)이고
고독의 즐거움은 솔리튜드(Solitude)다
사회와 조직에 과잉 적응하여 자아를 잃지 말자.

노래 한 곡 소개합니다. 가수 서유석이 1971년 헤르만 헤세의 ‘미인’이라는 시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번역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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