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

11.30.2013.

인간에게 돈은 살아가는 데 수단(手段)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근본적으로 돈이 본질(本質)인 자본주의(資本主義)가 발전함에 따라 휴대하는 권력으로 바뀌면서부터 목적(目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인과 관계는 무너지고 사회는 혼탁해 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중요해도 수단은 건너뛸 수 없습니다. 목적과 수단 간의 필연적 관계는 반드시 합리적 수단이 요구되는 목적론적 필연성(目的論的 必然性)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 제목을 천박하게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저와 비슷하게 한심한 이가 또 한 사람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 앵거스 데튼 교수팀이 미국인 45명이 아닌 45만 명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 연간 수입이 75,000달러(8,000만 원)까지만 행복하고 그 이상이 넘어가면 소득과 행복이 정비례하지 않았습니다. 환율로 보지 않고 실질적 가치로 봤을 때 한국 돈 약 1억 원까지가 행복하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만약 한국 사람에게 물었다면 금액이 이보다 더 많았을 겁니다. 가난한 시대를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돈이 최상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입니다.

영국인은 연소득이 5만 파운드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답니다. 한국 돈 약 8,000만 원입니다. 7만 파운드를 버는 사람이 5만 파운드를 버는 사람보다 덜 행복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과정은 힘이 들지만, 막상 정상에 올라서서 또 다른 정상을 바라보았을 때의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던(Elizabeth Dunn) 교수와 연구팀이 50명 학생을 대상으로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조사했습니다. 학생들을 아침 일찍 모이게 하여 행복상태를 조사한 후 무작위로 5달러에서 20달러를 주고 오후 5시까지 다 쓰고 오게 했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학생 절반은 음식을 사 먹거나 카드 대금을 갚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학생 절반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거나 남에게 선물하는 등 사회적으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학생 1인당 준 돈의 금액이 많지 않음을 주목하십시오.

5시가 되어 돌아온 학생의 행복 상태를 조사했더니 자신을 위해 돈을 쓴 학생보다 남을 위해 돈을 사용한 학생의 행복도가 더 높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을 위해 쓴 돈의 금액과 관계없이 5달러를 쓴 학생이나 20달러를 쓴 학생은 비슷하게 행복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느끼는 행복과 우리가 홈 리스의 손에 쥐여주는 1달러의 행복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단지 매스컴을 통하여 동네방네 알려지지 않는다는 차이겠지요.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바로 남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주관한 던 교수는 돈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에 따라 어느 방향이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운전을 먼저 자식이 잘 있나 자식 집부터 가고 시간이 나면 남의 집을 돌보자는 경우가 많고 미국 사람들은 남의 집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합판으로 얼기설기 붙인 쪽방에 살면서 폐지 수거하여 팔아 모은 돈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1,000원을 기부하는 그들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글 한 줄 더 읽었다고 우쭐댈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행복은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술집이 많은데 한겨울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어묵 국물을 마시며 느끼는 행복은 추억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추억은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 여행과 같습니다. 목적지에 대한 지식을 쌓고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행복의 징표로 사진을 남깁니다. 추억입니다.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술이나 마약 또는 쇼핑 중독과 같은 것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입니다. 1달러를 투자해 로또를 사서 1주일간의 기다림은 행복이 아니고 쾌락입니다. 행복과 쾌락의 다른 점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쾌락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행복은 과정(수단)이 추억으로 쌓여 결과(목적)가 아름답지만, 쾌락의 결과는 허무만 남습니다.

도요타 자동차의 렉서스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라고 광고합니다. 자신들의 차가 돈 많은 사람이 타는 차이며 자신들의 차를 사면 행복해진다는 등쳐먹는 소리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새 차를 운전하는 즐거움은 새 차가 중고차가 되기도 전에 이미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물질적인 뒷받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소한 절대 빈곤에 시달려선 안 됩니다.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부탄 왕국은 국민 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가 높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부탄에 가서 살면 행복할까요?

특히 한국 사람들이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니얼 케너만과 같은 행동경제학자는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말을 타면 견마(牽馬) 잡히고 싶다(말을 타면 마부 두고 싶다)는 속담처럼 부가 높아질수록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남을 의식하면 스스로 불행해 집니다. 도봉산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등반하는 옷과 장비로 과시하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증대된 갈망은 우리가 비싼 재화를 소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할 뿐더러 우리가 인생의 소소한 일에 기뻐하는 능력을 후퇴시킵니다. 주변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 때 나는 행복해지며 남과 비교하며 기대치가 높을 때 사람은 불행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 배가 아픈 것은 배가 고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배가 아파 불행한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행복은 영혼을 파는 것입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운 영혼을 누구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바로 발룬티어(Volunteer) 자원봉사입니다. 남을 위해 돈을 쓰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행복을 더 많이 느끼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행복이란, 기회가 묻거든 네! 하고 대답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조건이란 목적과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아내와 사별하고 아내의 물건을 정리하다 아내가 곱게 접어둔 실크스카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해 보니 젊은 시절 해외 출장 때 사준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애지중지하면서 차마 두르지 못하고 아껴두었던 것입니다. 스카프를 쓸 특별한 날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행복은 아껴두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지금 현재 자신이 살아있음에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서야 그때가 행복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현재는 항상 불행한 것입니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망상은 다수 국민이 상위 1% 계급인 가진 자들의 이익에 종사하는 자본주의(Capitalism)를 넘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금권주의(Plutonomy. 부유층 주도경제)로 넘어가고 있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반드시 백화점이나 슈퍼에 행복을 판매하는 코너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소설가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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